
자연물이 단순히 목적을 갖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을 실현할 능력도 타고나며, 그 목적은 방해받지 않는 한 반드시 실현될 것이고, 그 본성적 목적의 실현은 운동 주체에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믿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자신의 견해를 “자연은 헛된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어떤 행동을 할 때는 적절한 목적에 근거를 두어야 하고, 그 목적이 올바른지 끊임없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당장 일상에서도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만 보다가 하루(또는 그 이상)를 날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지 않나. 물론 누군가 혼자서만 그렇게 살겠다면야 말릴 건 없지만, 집단적으로 비화할 때 큰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모두가 이익”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본능의 층위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없다. 당장 돈이 덜 들어가면 이득인가? 소위 말하는 ‘적폐’에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여 선거 앞두고 현금으로 살포하는 것이 이득인가? 같은 일은 한다고 같은 돈을 받는 것이 평등한가?
그런 사회에서 평등하게 사는 것이 자본주의의 콩고물을 받아먹으며 사는 것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봐오지 않았나?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에도 당장 눈 앞만 보려 하는 그들은 항상 수적으로 월등하다.
어떤 행동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착각. 그 행동을 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국민” “이웃”에게 “죽음” “위중증”의 피해를 준다는 막대한 손해만 남긴 감성팔이 선동은 옳고 그른지조차 논의하는 것도 봉쇄했다. 권력과 통제의 맛을 본 존문가들은 이 엄청난 꿀단지를 절대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광신도들이 그 권위를 단단히 지켜주는데 놓을래야 놓을 수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이들은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이 어찌 그리 속수무책으로 휩쓸려 나갈 수밖에 없었는지 공부할 필요가 있다.
언론에 크게 다루어지는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수많은 ‘전문가’들이 출몰해 서로의 전문성을 과시했고, 적극적인 개선책을 내놓으며 말의 성찬을 벌였다.
이국종, 『골든 아워 2』 흐름출판, 2021.